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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잘 알려지지 않은 또다른 안중근 의사의 면회 사진

* 이 글은 제 네이버블로그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가독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더 좋은 형식의 글을 보시려면 여기로 들어가세요.

https://blog.naver.com/minsu977/221145056474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만큼 유명한 사진이니까요. 

 

이 사진은 2006년 1월, 북한이 공개한 안중근 의사의 생전 사진으로 1910년 3월 9일 혹은 10일에 촬영된 것입니다. 이 사진에는 일본 헌병 5명에게 둘러싸인 안중근 의사가 면회를 온 동생 안정근(定根)(恭根) 형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정근, 공근 형제 옆에 자리잡으신 분은 안중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니콜라 빌헬름(Nicolas Joseph Marie Willhelm; 한국명 홍석구) 신부입니다. 

<빌헬름 신부>

 

1910년 3월 9일10일에 빌헬름 신부는 정근, 공근 형제와 면회를 와 안중근 의사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 고해성사와 미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위 사진이 3월 9일에 찍혔는지 아니면 10일에 찍혔는지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 헌병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위엄눈빛이 살아있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국내의 안중근 의사를 다룬 책에는 반드시 빠지지 않는 사진 중 하나로 꼽힙니다. 

<안중근 의사를 확대한 모습>

 

그런데 현재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안중근 의사의 면회 사진이 한 장 더 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시각, 같은 날짜, 같은 배경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최상단의 사진과는 달리 이 사진은 국내의 교과서 뿐만 아니라 안중근 의사를 다룬 책에서도 쉽게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아마 사진의 중심안중근 의사에게 맞춰져 있는 최상단의 사진과는 달리 이 사진은 안중근 의사가 아니라 그의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에게 다소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보다시피 이 사진 속의 안중근 의사는 초점이 빗나간 상태고 그나마도 머리 일부분만 찍힌 사진이라 최상단의 사진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임팩트가 큰 사진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정근, 공근 두 형제에게 포커스가 집중됨으로써 면회 당시 이들이 안중근 의사를 어떤 자세로 맞이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후에 찍힌 안정근과 안공근>

 

안공근은 자신을 촬영하고 있는 사진기가 낯설어서인지 사진사를 바라보고 있네요. 반면 안정근은 입술을 꾹 다물면서 안중근 의사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거나 형이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사실 때문에 당장이라도 울고 싶지만 그 슬픔을 힘겹게 억누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이 한 장의 사진에는 이토록 수많은 해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첫 번째 사진은 안중근 의사의 특유의 냉철함과 품위를 보여주고 있는 사진이라면 두 번째 사진은 형을 대면한 후 안정근과 안공근의 복잡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 <여담>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현재 안중근 의사의 공식적인 유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말이 위의 사진들이 찍힌 시기인 3월 9일 혹은 10일에 남겨진 유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안중근이 해당 유언을 안정근과 안공근에게 전한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는 이 유언을 위 사진들이 찍힌 3월 9일 혹은 3월 10일이 아니라 사형 전날인 3월 25일에 전했습니다. 

 

1910년 3월 25일, 안정근과 안공근이 다시 면회를 왔고 이 때 안중근 의사는 두 동생에게 해당 유언을 남겼습니다. 또한 두 동생에게 노모의 안부를 묻거나 불효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청을 해달라는 당부도 함께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안중근 의사는 세상과 작별의 인사를 가졌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