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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승정원일기의 마지막 기사

* 이 글은 제 네이버블로그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가독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더 좋은 형식의 글을 보시려면 여기로 들어가세요.

https://blog.naver.com/minsu977/221046665761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는 조선이 창건된 1392년부터 조선(엄밀히 말하자면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까지 승정원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기록물 중 하나다.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승정원일기는 1차 사료라서 사관에 따라 기록이 유실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실록과는 달리 그 내용이 매우 방대하고 세세하다.

 

비록 임진왜란 등의 전란의 영향으로 현재 조선 초의 승정원일기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현재 남아있는 승정원일기는 인조 1년부터 순종 4년까지의 287년의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보다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데 조선왕조실록이 49,646,667자인 반면 승정원일기는 무려 242,500,000자나 된다. 이렇다 보니 몇 년전에 번역을 끝낸 조선왕조실록과는 달리 승정원일기는 아직까지도 번역작업 중이다.

 

이렇게 조선왕조의 역사를 세세하게 전해주던 승정원일기도 이 기록을 끝으로 멈추었다:

 

한국의 통치권을 일황에게 양여한다는 칙유를 내렸다

 

○ 칙유(勅諭). - * '임금 또는 황제가 직접 전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황제는 이르노라.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왕업(王業)을 이어 받들어 임어(臨御)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신 정령(維新政令)에 관하여 속히 도모하고 여러모로 시험하여 힘써온 것이 일찍이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으되 줄곧 쌓여진 나약함이 고질을 이루고 피폐(疲弊)가 극도(極度)에 이르러 단시일 사이에 만회(挽回)할 조처를 바랄 수 없으니, 밤중에 우려(憂慮)가 되어 뒷갈망을 잘할 계책이 망연(茫然)한지라. 이대로 버려두어 더욱 지리하게 되면 결국에는 수습을 하지 못하는 데에 이르게 될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위탁하여 완전할 방법과 혁신(革新)의 공효(功效)를 이루게 하는 것만 못하겠다. 짐이 이에 구연(瞿然)히 안으로 반성하고, 확연(確然)히 스스로 판단하여 이에
한국의 통치권(統治權)을 종전부터 친근하고 신임(信任)하던 이웃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께 양여(讓與)하여 밖으로 동양(東洋)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도 민생(民生)을 보전케 하노니, 오직 그대 대소 신민(大小臣民)들은 나라의 형편과 시기의 적절함을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동요하지 말고, 각각 그 생업에 편안히 하며 일본 제국(日本帝國)의 문명 신정(文明新政)에 복종하여 모두 행복을 받도록 하라. 짐의 오늘 이 거조는 그대들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대들을 구활(救活)하자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 신민(臣民) 등은 짐의 이 뜻을 잘 체득하라.

 - 승정원일기의 마지막 기사, 1910년 8월 29일.

 

1910년 8월 29일. 이 날은 519년동안 이어져 온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민족의 해가 저버린 날이었다. 더불어 지도 상에서 우리나라가 삭제되고 일본의 영토로 변했으며 35년동안 이어질 일제강점기가 시작한 때였다. 보통 이 날을 한일병합조약이라 불리고 있지만 엄연히 불법적으로 진행된 조약이므로 경술국치 또는 국권피탈이라 불리는 게 옳다.

이 승정원일기의 마지막 기사를 보면 괜스레 울적해지는 느낌이 든다.